아기가 넘어진다
公無渡河
마음의 손을 먼저 뻗으나 몸은 너무 느려터졌다
公竟渡河
함께 하지 못함이 이러한 건가
墮河而쿵
내가 무너진 자리에서 아이가 자지라지게 운다
當奈公何
길 잃어 넋 놓은 곳에서
애미애비의
천년 묵은 목소리가 울린다
천지신명이여! 천지신명이여!
2008년 7월 1일 화요일
우리한번 도를 넘어 볼까요?
그녀와 같이 걸었다. 빌딩 옆에서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길 기다렸다.
내가 말했다.
"우리 한번 도를 넘어볼까요?"
그녀가 웃으며
"그러죠" 한다.
신호등에 불이 들어오자
우리는 횡단보<도>를 넘어갔다.
내가 말했다.
"우리 한번 도를 넘어볼까요?"
그녀가 웃으며
"그러죠" 한다.
신호등에 불이 들어오자
우리는 횡단보<도>를 넘어갔다.
도를 찾아 떠난 후배에게
사람들이 날 복도처럼 지나 갔다.
어떤 이는 뛰어서
또 어떤 이는 살금살금
복도 옆에는 그 무언가
강의실이나 실험실 같은 것이
유령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복도를 육체라고
그 유령을 두뇌라고 이름 붙혀볼까
아니
복도로 시작해
복도로 끝나네
라고 비웃고 지나가는 저 사람은
언젠가 만난 적 있는
우리 아버지같다
먼지때문에 폐를 다쳤지만
나는 복도를 닦지 않았다
알약은 면역체계를 위축시켰다
그리하여
신을 벗고 올라오시오 라고
또
정숙보행 이라고 적었다가
마침내
관계자 외 출입금지를 붉은 글씨로 써붙혔다
그러나 아무도 읽지 못했다
문맹의 마을이었나
복도는 복도다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 있어
사람들은 아무렇게 서리하고
아무렇게 울타리를 넘어 다녔다
정자나무 아래에
왜 사람이 들끓을까
그는 우주의 가을을 말하며
종교의 길로 들어섰다
나는 그 아버지의 눈물을 말없이 보고 있었다
나를 착하다 고 하는 사람은
다들 나를 만만하게 봤어요 라고 그는 중얼거렸다
어떤 이는 뛰어서
또 어떤 이는 살금살금
복도 옆에는 그 무언가
강의실이나 실험실 같은 것이
유령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복도를 육체라고
그 유령을 두뇌라고 이름 붙혀볼까
아니
복도로 시작해
복도로 끝나네
라고 비웃고 지나가는 저 사람은
언젠가 만난 적 있는
우리 아버지같다
먼지때문에 폐를 다쳤지만
나는 복도를 닦지 않았다
알약은 면역체계를 위축시켰다
그리하여
신을 벗고 올라오시오 라고
또
정숙보행 이라고 적었다가
마침내
관계자 외 출입금지를 붉은 글씨로 써붙혔다
그러나 아무도 읽지 못했다
문맹의 마을이었나
복도는 복도다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 있어
사람들은 아무렇게 서리하고
아무렇게 울타리를 넘어 다녔다
정자나무 아래에
왜 사람이 들끓을까
그는 우주의 가을을 말하며
종교의 길로 들어섰다
나는 그 아버지의 눈물을 말없이 보고 있었다
나를 착하다 고 하는 사람은
다들 나를 만만하게 봤어요 라고 그는 중얼거렸다
괜히
어디 쯤에 나는 늙어 섰는가
하늘이 가문 논처럼 쩌억쩌억 갈라져 있는
별이 표창처럼 떨어져 살점을 찢는
무엇인가
아가의 귀여운 웃음이
이 나간 그릇을 아물게 하는
나는 어디쯤 늙어 이렇게 섰는가
총알보다 빠르게
남의 그림자가
대못처럼 내게 박힌다
에서 도 없고 으로 도 없는
눈이 있다면
비가 있다면
안개가 있다면
나는 그 안에서 번지리라
지우며 지우며 번지리라
너나할것없는곳에서눈물이
너나할것없는곳으로눈물이
그래서
우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눈물 밖에 없으므로
공동체의 우물물은
눈물이다
손톱들이 가슴 한켠에 가득하다
누군가를 할퀴지못하고 마음 다잡아 잘라낸 것들이다
어둠처럼 내리는 그리움에
사람들 운다
해의 끝없는 손찌검에
하릴없이 도리 없이 반짝인다
생명체는 죽고 눈물만이 남는다
겨자씨처럼 적고 아기처럼 어린
그는 오래도록 옹알이만 하고 있다
무덤을 안고
무덤을 베개처럼 배고
무덤을 이불처럼 덮고
한 늙은이가 밤새 뒤척인다
날을 날채 먹는
잔치
가없는 가
동지는 어제 오늘은 입춘이고
모레는 상강
다음날은 죽을 날이라고 되뇌인다
숫돌같은 저승이
칼같은 이승을 갈고 있다
괜히.............사람들은...
괜히.........그러고
괜히.......................산다
괜히....사람들은....괜히.............
하늘이 가문 논처럼 쩌억쩌억 갈라져 있는
별이 표창처럼 떨어져 살점을 찢는
무엇인가
아가의 귀여운 웃음이
이 나간 그릇을 아물게 하는
나는 어디쯤 늙어 이렇게 섰는가
총알보다 빠르게
남의 그림자가
대못처럼 내게 박힌다
에서 도 없고 으로 도 없는
눈이 있다면
비가 있다면
안개가 있다면
나는 그 안에서 번지리라
지우며 지우며 번지리라
너나할것없는곳에서눈물이
너나할것없는곳으로눈물이
그래서
우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눈물 밖에 없으므로
공동체의 우물물은
눈물이다
손톱들이 가슴 한켠에 가득하다
누군가를 할퀴지못하고 마음 다잡아 잘라낸 것들이다
어둠처럼 내리는 그리움에
사람들 운다
해의 끝없는 손찌검에
하릴없이 도리 없이 반짝인다
생명체는 죽고 눈물만이 남는다
겨자씨처럼 적고 아기처럼 어린
그는 오래도록 옹알이만 하고 있다
무덤을 안고
무덤을 베개처럼 배고
무덤을 이불처럼 덮고
한 늙은이가 밤새 뒤척인다
날을 날채 먹는
잔치
가없는 가
동지는 어제 오늘은 입춘이고
모레는 상강
다음날은 죽을 날이라고 되뇌인다
숫돌같은 저승이
칼같은 이승을 갈고 있다
괜히.............사람들은...
괜히.........그러고
괜히.......................산다
괜히....사람들은....괜히.............
지옥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의식이 아니라 존재이다
우리는 흔히 타자의 의식이 나의 의식과 부딪힌다고 잘못 생각하곤 한다.
다른 환경과 다른 문화에 의해 배양된 타자의 의식이 나와 맞지않는다고 말할 때
우리는 쉽게 그 초점을 의식에 맞추곤 한다.
과거에 배양된 의식 끼리 서로 상충한다 고 보는 것이다. 서로 사맞디아니함 맞지않음을 의식에 초점을 맞추고 거기에 비난을 돌리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목해야할 점은 현재 그 또는 그녀의 존재이다.
현재 타자의 의식이 문제이기보단 현재 타자의 존재가 문제인 것이다. 그 존재의 충돌을 주목해야한다. 그것은 의식이라기 보다 물질 같은 것이다. 그 존재가 지옥이 될 때 그 타자의 의식 또한 지옥이 되는 것이다.
존재는 사고의 덩어리가 아니라 몸과 짓의 덩어리이다. 거기에는 의식이 아닌 외모와 표정과 갖가지 반응행동들이 있다. 거기에서 타자의 눈에 그려지는 지옥이 만들어진다. 타자의 의식에 지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에서 타자가 지옥이라고 느끼는 그 무엇들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행려병자들의 지독한 냄새는 그들의 의식에서 나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타자의 의식에서 그 무엇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지옥은 존재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 지옥은 존재가 계속하는 한 없어지지 않는다.
그대 어떤 누구와 사귀고 있는가? 거기에 지옥이 있다. 존재와 존재 거기에 늘 지옥이 존재한다.
문제는 그 지옥을 어떻게 '없는 것 처럼' 만드느냐는 것이다.
제일 쉬운 것은 권력 더 좁게 말하면 폭력일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지옥을 폭력으로 극복하고자하는지 모른다. 폭력은 깡패조직과 같은 수직적 위계형태의 조직에서는 효과가 있을 것이나 사적인 관계에서는 오히려 더 다양한 지옥을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지옥 스팸메일같은 것이 되기가 쉽다.
존재가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거기에 지옥도 묻어 들어온다. 그러나 완력으로 그 지옥은 소멸되지않는다. 그 무엇으로도 해소되지 않을 것이나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는 마술은 부릴 수 있다. 그것은 초월이라는 형태에 의지함으로서 가능해진다. 무조건적인 사랑! 그것은 지옥을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고 보이는 지옥을 희생과 헌신을 통해 무화시켜버린다. 생각과 행동에 있어서 무조건적인 사랑이란 드문 것이고 그 중 하나만 완전하기도 힘든 것이긴 하나 아무튼 광신은 지옥을 무너뜨리는 힘을 갖는 존재임은 틀림없다. 존재의 지옥과 대척점에 서 있는 천국이라는 ,천당이라는, 지상낙원을 세우는 힘이 존재한다는 것은 가히 경이로운 일이다.
하지만 만행이나 광기는 일방 존재의 우월을 통해 가능하다는 점에서 비대칭적이고 그로 인해서 비현실적인 여러 문제를 일으키기도 쉽다. 일방의 우월화는 타방의 수동화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존재의 지옥을 어떻게 슬기롭게 빠져나가듯 헤쳐나가듯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비낭만적인 이론을 받아들임으로서 어느 정도 가능하다. 절대적 소통의 욕망을 자제하고 잔대가리 놀이 곧 게임이론을 현실화 함으로서 가능해진다. 게임이론이나 학습이론을 통해 존재의 지옥은 보상체계에 의해서 또는 자극 반응의 작용을 통한 강화에 의해서 지옥은 현실적으로 조작가능한 지옥의 형태로 바뀌게 된다. 물론 차선책이며 그것은 감정영역의 미진함을 자기 내부 깊은 곳에 유폐시키므로서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관계에 마약과 같은 중독성 강한 것이 끼여있을 경우 잔대가리 놀이나 떡과 매 놀이 또는 왈개기와 달래기는 무용할 수 있는 것이니 그 부분은 주목을 요한다.
아무튼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다.
존재와 존재가 만들어 내는 무지개의 존재는 지옥과 배를 맞대고 있다는 것이다.
존재가 어느 일방에 지옥을 빚는다면 그 관계는 소멸하는 것이 옳다. 헤어지라는 전언이며 그것이 답이 아닐지라도 현명한 처방이다. 비현실적이라고 말해도 그것이 원칙적으로 옳다. 그것이 수용불가능할 경우 잔대가리 놀이나 떡과 매놀이를 해 변화하는 방법을 선택해라!
글맺기 전에 하나 더 덧붙이면 아이와 엄마의 관계같은 것이다. 아이와 엄마 관계에서 지옥이 존재하는가? 존재가 지옥을 만든다는 명제는 그 관계에서 전면적 위험에 처해지는 것은 아닌가? 지옥이 아니다. 존재라고 말할 때 그것은 사고와 행동을 구현하는 인간, 세속의 때에 묻어 생각이 굳은 인간을 가정하였기 때문이다. 아가는 그런 인간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다른 환경과 다른 문화에 의해 배양된 타자의 의식이 나와 맞지않는다고 말할 때
우리는 쉽게 그 초점을 의식에 맞추곤 한다.
과거에 배양된 의식 끼리 서로 상충한다 고 보는 것이다. 서로 사맞디아니함 맞지않음을 의식에 초점을 맞추고 거기에 비난을 돌리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목해야할 점은 현재 그 또는 그녀의 존재이다.
현재 타자의 의식이 문제이기보단 현재 타자의 존재가 문제인 것이다. 그 존재의 충돌을 주목해야한다. 그것은 의식이라기 보다 물질 같은 것이다. 그 존재가 지옥이 될 때 그 타자의 의식 또한 지옥이 되는 것이다.
존재는 사고의 덩어리가 아니라 몸과 짓의 덩어리이다. 거기에는 의식이 아닌 외모와 표정과 갖가지 반응행동들이 있다. 거기에서 타자의 눈에 그려지는 지옥이 만들어진다. 타자의 의식에 지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에서 타자가 지옥이라고 느끼는 그 무엇들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행려병자들의 지독한 냄새는 그들의 의식에서 나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타자의 의식에서 그 무엇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지옥은 존재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 지옥은 존재가 계속하는 한 없어지지 않는다.
그대 어떤 누구와 사귀고 있는가? 거기에 지옥이 있다. 존재와 존재 거기에 늘 지옥이 존재한다.
문제는 그 지옥을 어떻게 '없는 것 처럼' 만드느냐는 것이다.
제일 쉬운 것은 권력 더 좁게 말하면 폭력일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지옥을 폭력으로 극복하고자하는지 모른다. 폭력은 깡패조직과 같은 수직적 위계형태의 조직에서는 효과가 있을 것이나 사적인 관계에서는 오히려 더 다양한 지옥을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지옥 스팸메일같은 것이 되기가 쉽다.
존재가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거기에 지옥도 묻어 들어온다. 그러나 완력으로 그 지옥은 소멸되지않는다. 그 무엇으로도 해소되지 않을 것이나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는 마술은 부릴 수 있다. 그것은 초월이라는 형태에 의지함으로서 가능해진다. 무조건적인 사랑! 그것은 지옥을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고 보이는 지옥을 희생과 헌신을 통해 무화시켜버린다. 생각과 행동에 있어서 무조건적인 사랑이란 드문 것이고 그 중 하나만 완전하기도 힘든 것이긴 하나 아무튼 광신은 지옥을 무너뜨리는 힘을 갖는 존재임은 틀림없다. 존재의 지옥과 대척점에 서 있는 천국이라는 ,천당이라는, 지상낙원을 세우는 힘이 존재한다는 것은 가히 경이로운 일이다.
하지만 만행이나 광기는 일방 존재의 우월을 통해 가능하다는 점에서 비대칭적이고 그로 인해서 비현실적인 여러 문제를 일으키기도 쉽다. 일방의 우월화는 타방의 수동화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존재의 지옥을 어떻게 슬기롭게 빠져나가듯 헤쳐나가듯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비낭만적인 이론을 받아들임으로서 어느 정도 가능하다. 절대적 소통의 욕망을 자제하고 잔대가리 놀이 곧 게임이론을 현실화 함으로서 가능해진다. 게임이론이나 학습이론을 통해 존재의 지옥은 보상체계에 의해서 또는 자극 반응의 작용을 통한 강화에 의해서 지옥은 현실적으로 조작가능한 지옥의 형태로 바뀌게 된다. 물론 차선책이며 그것은 감정영역의 미진함을 자기 내부 깊은 곳에 유폐시키므로서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관계에 마약과 같은 중독성 강한 것이 끼여있을 경우 잔대가리 놀이나 떡과 매 놀이 또는 왈개기와 달래기는 무용할 수 있는 것이니 그 부분은 주목을 요한다.
아무튼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다.
존재와 존재가 만들어 내는 무지개의 존재는 지옥과 배를 맞대고 있다는 것이다.
존재가 어느 일방에 지옥을 빚는다면 그 관계는 소멸하는 것이 옳다. 헤어지라는 전언이며 그것이 답이 아닐지라도 현명한 처방이다. 비현실적이라고 말해도 그것이 원칙적으로 옳다. 그것이 수용불가능할 경우 잔대가리 놀이나 떡과 매놀이를 해 변화하는 방법을 선택해라!
글맺기 전에 하나 더 덧붙이면 아이와 엄마의 관계같은 것이다. 아이와 엄마 관계에서 지옥이 존재하는가? 존재가 지옥을 만든다는 명제는 그 관계에서 전면적 위험에 처해지는 것은 아닌가? 지옥이 아니다. 존재라고 말할 때 그것은 사고와 행동을 구현하는 인간, 세속의 때에 묻어 생각이 굳은 인간을 가정하였기 때문이다. 아가는 그런 인간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길
길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그러나 청살피가 나무를 타고 휘청거리는 가지끝에서
다른 나무의 가지 끝으로 뛰어 매달린다.
잔나비와 하늘 다람쥐의 동선은 도덕경을 지운다.
저게 길이다.
개미가 올라타고 가는 식물의 줄기가, 말나리 꽃잎이 길이다.
사람들이 걷는 길, 환멸이 생기는 곳에서
하늘의 길
식물의 길
물고기의 길이 보인다.
별똥의 길이 있고
먼지의 길이 있다.
너무 오래도록 사람들은 사람들만의 길을 만들었다.
사거리에
노루가 지나가는 신호등은 켜지지 않았다.
무단 횡단
비명 횡사
산복도로는 지도에서 태어나
우주물정에 어둡다 그래서
잔인하다.
추상적인 것 또는 관념의 팔자가 기구한 건 태생의 한계 때문이다.
인간의 뇌에 구멍을 내야한다며
비가 내린다.
비가 흘러내리는 길이 된 몸뚱아리,
그대 환호하는가?
허공이 온통 길이고
바닥이 온통 한 길이라고
그러나 청살피가 나무를 타고 휘청거리는 가지끝에서
다른 나무의 가지 끝으로 뛰어 매달린다.
잔나비와 하늘 다람쥐의 동선은 도덕경을 지운다.
저게 길이다.
개미가 올라타고 가는 식물의 줄기가, 말나리 꽃잎이 길이다.
사람들이 걷는 길, 환멸이 생기는 곳에서
하늘의 길
식물의 길
물고기의 길이 보인다.
별똥의 길이 있고
먼지의 길이 있다.
너무 오래도록 사람들은 사람들만의 길을 만들었다.
사거리에
노루가 지나가는 신호등은 켜지지 않았다.
무단 횡단
비명 횡사
산복도로는 지도에서 태어나
우주물정에 어둡다 그래서
잔인하다.
추상적인 것 또는 관념의 팔자가 기구한 건 태생의 한계 때문이다.
인간의 뇌에 구멍을 내야한다며
비가 내린다.
비가 흘러내리는 길이 된 몸뚱아리,
그대 환호하는가?
허공이 온통 길이고
바닥이 온통 한 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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